북미 게임의 일본판이 으레 그러하듯, 포니캐넌에서 이식한 일본판 울티마 시리즈도 일본 특유의 자의적 해석이 들어가면서 원작과 달라진 부분이 몇몇 있습니다. 문제는 원작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왜곡이 존재하며 그 중 4편이 가장 심각한 편입니다. 일단 북미판과 일본판 미덕의 도형 완성 순서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보시다시피 도형이 완성되는 일부 순서가 다릅니다. 4번째 정의(Justice), 5번째 희생(Sacrifice), 6번째 명예(Honor) 이 세 가지인데, 순서가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아래에서 그 순서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3대 원리와 8대 미덕
3대 원리란 진실, 사랑, 용기를 뜻한다
진실은 정직의 미덕을 낳는다
사랑은 동정의 미덕을 낳는다
용기는 용맹의 미덕을 낳는다
진실과 사랑이 결합해 정의의 미덕이 태어난다
사랑과 용기가 결합해 희생의 미덕이 태어난다
용기와 진실이 결합해 명예의 미덕이 태어난다
진실과 사랑과 용기가 결합해 영성의 미덕이 태어난다
이 3대 원리의 결여는 교만이라는 악덕을 낳고 그것에 반하여 겸양의 미덕이 태어난다
게임 중에서 설명하는 미덕의 구현 원리입니다. 그런데 일본판은 도형 순서가 달라지면서
이러한 형태가 되어 미덕에 대응하는 색상이 틀어짐은 물론이고 아래의 서술 또한 맞지 않게 됩니다.
진실과 사랑이 결합해 정의의 미덕이 태어난다
사랑과 용기가 결합해 희생의 미덕이 태어난다
용기와 진실이 결합해 명예의 미덕이 태어난다
즉, 8대 미덕의 근간이 되는 3대 원리가 완전히 틀어집니다. 게임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 개념부터 오류가 발생하니 게임 전반이 심각하게 왜곡됩니다. 결국 미덕의 완성을 구하는 게임 속 일련의 과정을 부정당하게 되는 거죠.
▲ 미덕에 대응하는 도형은 울티마 9 카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포니캐넌에서 이식한 울티마 4는 전부 이렇습니다. (PC-8801, PC-9801, MSX2, X1, X68000 등) 유일하게 Fm Towns판만 북미 오리지널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는 개발자가 아니니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게임에 대한 이해 없이 처음 세 줄 순서처럼 그냥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린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포니캐넌이 울티마 전범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4편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5편에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 몇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엔딩에서 로드 브리티시가 만드는 문게이트의 색상입니다.
붉은색 문게이트는 달의 보주(Orb of the Moons)로 만들어집니다.
푸른색 문게이트는 달의 위상차로 발생하며 미덕의 도시 근방에 나타나는 문게이트가 바로 그것입니다.
문게이트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코덱스(영문)를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문게이트의 색상은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일본판은 역시나 설정파괴입니다. 이건 Fm Towns판을 포함한 일본판 전부가 그렇습니다. 게임에 일본식 정서가 반영되어 분위기가 바뀌는 건 일본 자국을 위한 현지화이니 이해하지만 원작의 핵심 요소에 대한 몰이해와 왜곡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일하게 오리진이 이식에 직접 관여한 Fm Towns 6편만이 이러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음성 지원 등의 추가요소와 더불어 높은 평가를 받는 편이죠. (MT-32 지원이 빠져 아쉬움은 남지만요)
어쨌든 일본판에는 이러한 원작 왜곡과 일본식 정서가 반영된 탓에 전기종 클리어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닌 이상, 입문용으로서 일본판 울티마는 개인적으로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인상을 받을 수 있거든요.
원작 경험 후 일본판 플레이 계획이 있다면 해당 사항을 참고하여 즐겨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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