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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S/게임 주저리

판타시 스타 2 - 돌아오지 않을 시간의 끝에서

by NSM53 PROJECT 2011. 7. 6.

 

 

※ 주의 :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예전 게임들은 하드웨어 성능의 제약과 데이터 용량의 문제로 그림 한 장 띄워놓고 텍스트로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프라이프가 게임의 화법을 바꿔버린 지금 시점에서는 말 그대로 빈약한 구시대적 요소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무궁한 상상력과 결부되어 마치 소설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는데 판타시 스타 2가 바로 제게 그런 재미를 안겨준 게임 중 하나입니다.

 

북미에서는 이 게임이 세가의 하드웨어가 아닌 닌텐도의 패미컴으로 발매되었다면 파이널 판타지나 드래곤 퀘스트의 아성을 뛰어넘는 명작으로 남았을 거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일본보다는 북미 쪽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공주를 구하거나 세계를 구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명랑 판타지(?)와는 달리 전반적으로 캐릭터 중심의 비극으로 가득찬 성인 취향의 서사 구조가 잘 먹혔나 봅니다. 89년이라는 시기를 감안하면 역시 세가이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게임이 아닐까 싶은데 모게임잡지의 왜곡된 공략...으로만 기억하시는 분들에게는 '어? 판타시 스타 2가 이런 작품이었어?'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 소녀가 악마와 싸우는 꿈을 매일 되풀이하는 주인공 유시스

 

작중의 무대는 전작 판타시 스타 1에서 1000년이 지난 알골 태양계입니다. 컴퓨터 마더 브레인의 관리 덕분에 풍요로움을 누리던 모타비아에 바이오몬스터가 이상발생하여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초반 유시스의 임무이나 중반에 이르면 히로인의 죽음과 마더 브레인에 의해 반역죄로 체포되어 범죄자가 되는 등 본격적으로 침울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 히로인의 죽음

 

판타시 스타 2를 이야기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히로인 네이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히로인의 죽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파이널 판타지 7이입니다. FF7은 97년 작품이니 PS2는 무려 8년 전에 이러한 충격적인 전개가 펼쳐지지만 어째 화자되는 건 FF7뿐입니다. 아무래도 이름값의 차이겠죠. 아니면 P와 F의 차이일까요?ㅋ

 

클라우드 : 에어리스! 거짓말이지...

세피로스 : 신경쓰지 마라. 이제 그 아이도 이 별의 정신 에너지가 된다. 나의 할 일은 끝났다. 남은 일은 북쪽을 향하는 것. 설원의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약속의 땅.

클라우드 : ...닥쳐! 자연의 사이클이나 네 녀석의 바보 같은 계획하고는 관계없어. 에어리스가 사라진다고. 에어리스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해. 웃지도 못해. 울지도... 화내지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아픔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손끝이 저려와. 입안이 바싹 마르고 눈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히로인의 죽음에 온갖 호들갑을 떠는 FF7과는 달리 PS2는 의외로 스크린샷처럼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더 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하지만 사람들 뇌리에 각인시키기엔 그 충격이 다소 부족한가 봅니다 :)

여담이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로 리메이크된 판타시 스타 2에서는 네이를 살릴 수 있는 루트가 존재하기도 합니다...(無念)

 

 

▲ 최종 보스 마더 브레인과의 싸움 그리고 승리...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건만...

 

어쨌든 웹에서 많이 접했을 이야기들을 새삼 꺼냈던 이유는 사실 이 결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지구인과의 혈투 속에서 주인공 일행은 과연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 모든 사건의 원흉인 지구인과의 접촉. 진실을 알게 된 유시스 일행은 분노하고...

 

 


그리고 엔딩...

 

 

여운을 남기는 이 엔딩은 결말의 해석을 유저의 몫으로 남기고 있지만 대게는 유시스 일행이 수적 열세에 몰려 지구인과의 싸움에서 죽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겨우 7명이 수백 명을 상대로 싸워서 살아남기는 어렵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양이 장미를 먹었을지 안 먹었을지 각자가 바라는 눈으로 보는 것처럼 판타시 스타 2의 결말도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마음 속에 남겨두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

 

그런데 최근 공식적으로 주인공이 승리해 지구인을 막은 것이라고 밝혔다 하네요. 세가는 이 진중한 작품의 엔딩도 울랄라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 버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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